2017년 8월 초순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분량 관계상 8월 6일을 기점으로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애플비, 사무엘, 온앤오프, 소소리바람의 데뷔 음반을 비롯해, 여자친구, 엔플라잉, 나인뮤지스, 박경, CLC, 비하트, 위너, 소녀시대, 리얼걸프로젝트, 유영진&태용의 신보를 다룬다.
랜디: 전작 ‘Fingertip’에서 그룹 색의 큰 방향 선회가 느껴져서 기대했는데, 여름이 오니 예의 그 자리로 돌아와 있다. 그러나 일본 서브컬처 어디선가 수입해온 듯한, 시골로 떠나는 여름방학의 그립고도 청량한 느낌이란 분명 매력적이고, 제작 측에서도 이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2015년 여름에 발매한 ‘오늘부터 우리는’에서 많이 달라지지 않은 2017년의 여름 미니.
미묘: ‘귀를 기울이면’은 ‘오늘부터 우리는’의 공식을 이어간다. 산뜻하고 가벼운 듯이 나가지만 실은 격정적이고 슬픈 노래다. 복합적인 감정이라고도, 또는 구간에 따라 감정선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것도 여자친구의 서브컬처 친화적인 인상에 일조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귀를 기울이면’의 다소 애매한 구석(을 느꼈다면)이 납득된다. “널 향한 설레임을”의 격하고 단호하며 숨찬 후렴이 비해 “어디서든 들려와”는 유하고 서정적이다. 그것은 가요계에 대중적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세련된, 이 프로덕션의 성향에 의해 조금 아쉬운 영역으로 떨어진다. 특유의 질감이 비장한 단조일 때는 최소한의 무난함을 충족하지만, 밝으면서 서정적일 때는 이야기가 좀 다르기 때문이다. 버스가 슬프기보다는 뽕끼 있는 가벼움이라면, 다소 어수선할 수 있는 프리코러스는 버스의 질감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수선하다. 후렴은 후반 은하와 유주 파트에서야 절정을 맞으며 그 멜로디의 질감은 조금 고루하다. (다만 후렴 멜로디의 리듬만큼은 힘차기 때문에, 공연장에서 리듬과 가사만으로 외치며 ‘응원’할 땐 꽤 격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그것이 고려사항이었다면 말이다.) 활기차긴 하지만 조금 저연령 대상처럼 느껴지는 안무도 아쉬움을 남기는 가운데, 귓가에 손을 대고 몸을 돌리는 안무만을 기억하고 넘어가고 싶다.
오요: 여자친구 특유의 비장미가 감도는 일본풍 팝으로 가득 채운 앨범을 들고 나왔다. 여름을 겨냥하고 나온 앨범이라고는 하지만 이전작들과 큰 차이점은 없다. 다만 이 장르로 일가를 이룬 그룹답게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고르게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랜디: B.I.G가 소속된 GH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낮고 짧게 끊어가며 계속해서 테마를 연주하는 브라스가 어린이 만화의 주제곡 같은 장난끼 가득한 인상을 준다. 제목 때문에 노래를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유아화가 심한 노래려나 조금 우려가 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일단 가사는 여성 청소년 화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어르고 달래면서 연애의 기회를 엿본다는 내용이고, 제목인 ‘우쭈쭈’는 이런 맥락에서 반복된다. 로우틴을 겨냥한 듯하지만 취약하게 그리지 않아서 크게 해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미묘: 메르헨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은 뮤직비디오나, 고음으로 슬라이딩하는 베이스를 포인트 삼으며 ‘상큼함’에 전력한 음악 등 정석적인 영역에 충실하다. 자극적인 듯한 “우쭈쭈”는 촐싹거리는 분위기와 함께 저울의 수평을 맞춘다. 소속사 GH 엔터테인먼트에서 과거에 기획했던 걸그룹 틴트와도 상당 부분 비슷한 기본 설정으로, 팬시한 완구 느낌의 걸그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체크해볼 가치가 있을 듯하다.
랜디: 스페이스 오디티의 프로젝트 싱글. 이제까지 박경이 내온 개인 작업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재기발랄하게 연애에 대해 말하는 곡이다. 첫 줄 가사에서부터 모 시리얼 상품 타이업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냥 지나가는 CM송으로 치부하기엔 짜임새가 좋다. 박경은 참 노래를 랩처럼 잘 한다.
랜디: 데뷔 초의 저스틴 비버를 의식했음이 분명해 보이는 기획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사무엘 개인의 탤런트로 밀어붙이고 있는 싱글. 평소 용감한 형제 표 곡들에서 뗄 수 없게 느껴지던 특유의 통속성이나 신파 감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가사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야 하는데, 상기했듯이 이것을 남의 얘기처럼 산뜻하게 처리해버리는 사무엘 개인의 능력 때문이겠다. 중반부에 끼어 들어오는 창모의 랩 버스(verse)는 사무엘에게는 현재인 ’Sixteen’을 과거의 페이지로서 조망하고 있고, 그것이 노래에 대입할 연령층의 스펙트럼을 좀 더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재능 있는 청소년 인재의 무난한 출발.
미묘: 이 미니앨범의 어딘지 모를 덜그럭거림은 무엇일까. 개중 가장 잘 감기는 ‘Sixteen’도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더 근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뮤직비디오 속 사무엘의 몸놀림은 매 순간 찬란하지만, 강렬하고 쨍하기보다 나긋나긋한 사무엘의 보컬과 조합되는 음악이 탁월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만회하려는 듯 수록곡들은 보다 대중적으로 ‘힙합적인’ 어프로치를 취하는데 역시 아티스트가 주인공으로 부각되기에는 조금씩 역부족이라 때론 ‘이것보다는 잘하는 인물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무엘이 표현하는 스트리트와 용감한 형제의 스트리트가 서로 다른 그림체인 것은 아닐지. 또한 원펀치 시절부터 느껴지던, 소년이 소년을 연출할 때 이를 타자의 시선으로 관장하는 성인의 존재감이 ‘Sixteen’에서도 찜찜하게 뒷맛에 걸린다. 뮤직비디오 속 사무엘이 너무나 빛이 나기에, 그를 바라보는 이들이 그런 욕망을 느끼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요: 용감한 형제의 ‘뽕’으로 충만한 아이돌 튠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사무엘의 첫 미니 앨범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다. 대부분 용감한 형제의 히트곡은 걸그룹 곡이기에 과연 남성 아이돌인 사무엘에게 용감한 형제의 ‘뽕’을 어떤 식으로 이식했을지 많이 궁금했는데 막상 나온 결과물은 어설픈 R&B 힙합 음반이다. "내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 It doesn't matter at all"(‘I'm Ready’)라는 가사가 무색할 정도로 설익은 소리가 음반 전체에 넘쳐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토튠을 남발하고, 다양한 피처링도 투입해보았지만 치장이 과도하면 과도할수록 이는 음반의 빈약함을 반증할 뿐이다.
랜디: 5인조로 재정비해서 돌아온 엔플라잉의 두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진짜가 나타났다’는 김도훈이 잘 하는 뽕끼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2000년대 초반 가요계의 느낌을 내고 있지만, 그것을 플레이하는 엔플라잉 멤버들이 요즘 세대인 탓인지 그때만큼 걸쭉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뽕끼를 코믹하게 소화하고 있고, 이런 인상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면 배가 된다. 한때 원더걸스 등으로 유행하던 어설픈 판타지 코믹 뮤직비디오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한다.
랜디: B1A4와 오마이걸이 소속된 WM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보이그룹이다. 일단 음악이 좋다. 크레디트를 확인하니 웰메이드 신인 런칭의 가장 좋은 친구(!) 모노트리와 GDLO, 이주형 등이 보인다. 데뷔곡 ‘On/Off’는 트로피컬 소스를 아끼지 않고 써서 칠링한 팝 트렌드를 충실하게 반영한 동시에, 한국 청자에게 어필할 만한 준수한 멜로디를 갖고 있다. 프리코러스 뒤에 두 마디 정도 최소한의 보컬 하모니과 인스트루멘털만 흘리며 빌딩하다가, 확 터뜨리기 직전에 볼륨을 확 낮추고, 연이어 화성과 함께 “You’re my producer 너에게 내 모든 걸 맡겼어”를 터뜨린다. 오마이걸의 데뷔곡 ‘Cupid’의 인트로에서 느꼈던 화사함이나 청량감과 비슷하다. 적당히 멜로우한R&B 트랙 ‘If We Dream’ 등도 좋다. 잘 만든 신인의 음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앨범. 전곡을 추천한다.
심댱: WM 특유의 살짝 눌린 듯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100%가 아닌 7~80%의 기량을 여유롭게 선보이는 그들의 색깔은 앨범아트처럼 따뜻한 노란색이 어울린다. 그룹명과 동명인 타이틀곡 가사 중 “You're my producer”라는 구절은 화제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를 슬쩍 연상시키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가사는 저돌적인 데 비해, 칠(chill)한 사운드는 위협적이지 않은 소년 이미지를 남긴다. ‘On’, ‘&’, ‘Off’라는 세 유닛으로 구성된 흥미로운 조합이 이 미니앨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If We Dream’에서는 감성적인 ‘On’ 유닛이 노래하는 모습이, ‘Original’에서는 ‘Off’ 유닛의 강렬한 퍼포먼스가 기대된다. 여기서 ‘&’에 해당하는 멤버가 궁금해졌다면 무대를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요: 올여름 질리도록 차트를 뒤덮은 트로피컬 하우스다. 사실 이쯤 되면 계절감도 별로 중요하진 않고(이미 입추가 지났다!) 트로피컬 하우스를 한다고 나섰으면 이미 차고 넘쳐나는 기존 트랙들과 얼마나 다른지,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신인인 점을 감안하면 온앤오프는 꽤나 준수한 보컬과 랩을 타이틀곡 ‘On/Off’에서 선보이지만 곡 자체만 봤을 때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한 트로피컬 하우스 트랙이라 아쉽다. 오히려 미니 앨범의 다른 수록곡들이 더 인상적인데 비슷한 하우스 계열의 소리에 기반을 두고 있어도 ‘Difficult’나 ‘Original’의 리듬감이 훨씬 더 듣기에 재미있으며, 상당히 완성도 높은 R&B(‘If We Dream’)까지 듣고 나면 그룹의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미묘: 리패키지 타이틀의 제목이 ‘러브시티’라서 사랑의 송가일 거라 생각했더니 난폭하게 내달리는 데다가 가사도 함부로 들이대는 사람들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가는 내용이다. 후렴 멜로디가 레인보우의 ‘가십걸’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패셔너블한 경쾌함이나 반복적이고 무감정한 멜로디, “당당하게 걸어가”, “Red lips” 등 많은 부분에서 너도나도 ‘블링블링’을 입에 담던 나인뮤지스의 데뷔 시기 걸팝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다쳐’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합했다. (이 곡에서 ‘다쳐’는 곡풍을 지정하는 레퍼런스 이상의, 거의 패러디의 대상에 가까운 위치를 점한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가 가져본 적 없는 과거를 재창조한 것 같은 묘한 기분도 든다. 차트를 고공 행진할 만한 곡이라 보기는 조금 어렵지만 독특하고 신선한 시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난폭행각을 일삼는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모습이 즐겁고 신나 보이며, 이 묘한 곡에 잘 어울린다. 등장하는 파괴행위 중 마음에 든 것의 투표를 해본다면, 나는 풍선에 한 표를 던지겠다.
오요: 타이틀 곡 ‘러브시티(Love City)’ 도입부가 끝나자마자 경리의 보컬이 짜릿하게 귀를 파고든다. 이어 나인뮤지스 멤버들의 목소리가 하나씩 교차되다 내달리는 후렴이 등장하는데, 소리들이 깔끔하게 배열되지 못해 보컬이 뭉개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만다. 이것보다 조금만 더 날카롭게 소리를 다듬었더라면 ‘다쳐(Hurt Locker)’의 뒤를 잇는 뛰어난 트랙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랜디: 먼저 이 디스커버리는 8월 초 발매 당시 타이틀곡이었던 ‘어디야? (Where are you?)’를 두고 붙인 것임을 밝힌다. 부클릿 내용을 보면 큐브에서는 이 곡을 CLC의 ‘예쁨’에 맞춰 셀링하려고 한 듯하지만, 이 곡은 분명 그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좋은 트랙이었다. 로파이로 시작해서 스피커 가까이로 다가오는 인트로 하며, 70년대 스타일의 신스와 근사하게 이어지는 색소폰은 분명 7, 8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지던 시티팝 어딘가를 레퍼런스로 두고 있을 것이다. 최근 많은 가요가 이 시대의 소스를 따와서 변주하고 변용하고 있지만, 이 곡은 리듬조차 그때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정통적으로 들리고, 그래서 좋은 파격이었다. 금세 활동곡을 바꿔버린 것은 이런 곡을 케이팝 차트쇼의 무대에 올리는 것의 어려움을 알아버렸기 떄문이었을까? ’Summer Kiss’ 같은 곡을 부르는 그룹은 이미 많아서, 못내 아쉽다.
오요: 사실 베이퍼웨이브와 결합되어 열화된 시티팝을 다시 한번 열화 복제한 결과, 원본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에 비해, ‘어디야?’는 분명 원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동시대성을 잃지 않은 매력적인 트랙이다. 이어 퓨처 R&B의 맛만 가미한 ‘Bae’라든가 이제는 질릴 법도 하지만 꾸준히 등장하는 트로피컬 하우스 트랙 ‘Call My Name’도 미니앨범의 흐름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선택이다. 그러나 나머지 트랙들은 다소 뻔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도깨비’의 연장 선상에 놓인 ‘즐겨 (I Like It)’이나 다른 걸그룹의 곡이라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Summer Time’(이 곡으로 후속 활동을 이어 나간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팬송 ‘잡아줄게’까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다 “익숙하고 편한 게 그래도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찝찝한 앨범이 되었다.
미묘: 지금 케이팝에서 비트감 있는 달달한 R&B는 거의 정부 표준안이 존재하는 것 같은 양상이다. 이를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이 곡은 드럼의 노트가 많은 편인데, 표준안보다는 금속성인 샘플들이라 곡을 심히 지저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역시 표준안에 비해 멜로디의 밀도가 조금 높아, 수다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덜 깔끔하고 더 흘러가 버리는 면도 있다. 가사가 조금 덜 정돈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쏟아붓다가 확 내려놔 버리는 순간의 “나의 여름밤이 되어줘”는 인상에 남을 만한 구절인 듯하다. 앞에서 이를 좀 더 뒷받침해 줬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다.
김영대: 나일 로저스의 손길이 닿은 듯한 ‘Love Me Love Me’의 찰진 디스코 그루브와 ‘Island’의 트로피컬은 미국뿐 아니라 케이팝 전반에서 몇 년째 되풀이되는 지겨운 여름 공식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강승윤의 보컬과 미노의 랩이 흘러나오는 바로 그 첫 소절들에서 이미 불안감은 완벽히 일소된다. 유려한 보컬과 여유로운 랩의 자연스러운 어울림과 진행들, 전체적으로 다른 아이돌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몸에 밴 듯한 레이드백 정서는 결국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당연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다. 그룹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이승훈의 성장은 특히 반갑다. 이제껏 위너의 이름으로 나왔던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릴리즈가 아닐까.
랜디: 위너는 현재 자신들 커리어의 가장 좋은 시기를 지내고 있는 듯 하다. 전작 ‘Really Really’의 성공을 이어가려는 듯 ‘Love Me Love Me’는 같은 스트럭쳐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나, 멜로디와 사운드 텍스쳐가 달라서 신선하게 들을 수 있다. 다음 트랙인 ‘Island’도 듣기 좋은 칠링 트랙임은 마찬가지다. 주제를 연주하는 신스 브라스는 자칫 코믹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잘 눌러놓은 금관 사운드가 오히려 반짝이는 트로피컬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해외에서 조망하는 케이팝의 주된 매력은 주로 기계처럼 빈틈 없는 퍼포먼스나 전 트랙 음량이 빼곡한 사운드 등, 일명 '빡셈'이고, 이는 지난 몇 년 간 레트로나 느슨함을 지향하던 팝시장의 여름과는 거리가 있다. 위너는 이 씬에서 유독 눈에 띄는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이런 음악을 소화하고 있다. 각자의 캐릭터도 안정화 되어있어, 데뷔 초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여파가 남아있던 그 때보다 지금이 더 완벽한 ‘보이밴드’다워 보인다.
햄촤: 전작 ‘Really Really’의 성공에 굳히기를 들어가려는 듯 사뭇 닮은 분위기의 ‘Love me Love Me’와 여름 느낌 물씬 풍기는 ‘Island’를 내놓았다. 아무래도 ‘Really Really’가 각인된 만큼 비교가 쉽게 된다는 약점은 필연적이지만, 전작보다 조금 더 레트로한 분위기와 흥을 더해 시즌송으로서 전략적인 면도 고려하면서 여전히 멤버 간의 목소리 대비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늘어지지 않도록 본론만 간략하게 쳐낸 듯한 편곡이 돋보이는 두 곡이다. 공백기를 최대한 줄이고 가을-겨울 시즌에 어울리는 곡으로 기세를 이어주었으면 싶다.
미묘: 일본 3개 도시와 서울을 잇는 ‘일반인 아이돌’ 콘셉트의 프로젝트 그룹. 각 멤버가 떨어진 채 양국을 오가며 작업한다는 것이나, 첫 릴리즈가 그중 한쪽 국적(일본)의 시선을 전면적으로 담고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실행력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사운드와 뮤직비디오는 무척 노래방스럽다. 한국인 입장에서 듣기에 일본 음악의 향취가 묻어나는 우수 섞인 멜로디도 흥미롭기는 하나, 이 역시 지나치게 나이브한 색채로 이뤄져 있어 결과물로서 아마추어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짝사랑하던 한국인 남성을 그리워 하는 일본인 소녀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노래이며, “사실상 가사적으로는 대한민국 남성들을 위한 응원송”이라고 한다. 이국 소녀의 짝사랑을 받으면 응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좀 문제가 있다고밖에 할 수 없겠다.
김영대: 편곡이니 사운드니 하는 것들은 이번엔 잠깐 접어두고 싶다. 음악적으로 할 말이 없는 앨범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통상적인 걸그룹 음악에 비해 스타일과 요소가 많아 귀가 바쁘지만 그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느껴지지 않고 매끄러운 건 놀라운 일이다. 프로듀서들이 걸그룹에 다양한 장르나 요소의 배치를 꺼리는 이유는 특히 보컬 파트에서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인데, 소시는 빼어난 리드보컬을 중심으로 음악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서브보컬들의 노련함으로 그 부담을 정면돌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팀이다. 걸그룹 시대를 연 그들의 걸어온 길과 성과를 요약적이고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음악들과 함께, 그들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여전히 그들이 정상인 이유를 확인시키는 앨범이기도 하다.
랜디: 10주년을 축하하는 듯 잘 만든 화려함으로 가득한, 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앨범. 레트로한 훵키함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소녀시대의 지난 10년을 다 반영하고 있다기보다는 현역의 웰메이드 앨범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 부분에는 그래서 좋은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있는데, 이전에 같은 회사의 다른 남자 그룹들이 10주년을 맞았을 때는 이보다 성대한 세레모니가 있지 않았던가, 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앨범이 좋은 것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 앨범을 좀 더 거하게 축하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걸그룹의 수많은 처음을 써내려온 그 소녀시대라면 말이다. 그들의 10년 중에는 분명 MSG를 팍팍 친 자극적인 서브컬처 컨텍스트도 있었고, 연차가 높아질 때도 놓지 못 하던 ‘남자 응원가’ 같은 가사 등의 요소도 있었지만, 이들이 ‘걸그룹이 했을 때 대중에 받아들여지는 음악과 콘셉트’의 지경을 넓혀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좀 더 요란하게 축하하고 싶었음은 걸그룹의 커리어라는 것 자체가 힘세고 멋진 것으로 재조명 되었으면 했던 마음이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사운드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Fan’을, 데뷔 초의 90년대 M2M 느낌의 발라드가 그리운 분들에게는 ‘Only One’을 추천한다.
미묘: 잘 만든 앨범이라기보다는 잘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앨범이다. ‘소원을 말해봐’부터 이어진 ‘소녀시대 빡셈의 역사’의 측면에선 아쉬운 이도 있을 수 있겠다. 조금은 느긋한 공기가 있는 것도 사실. 그러나 그것이 콘텐츠의 루즈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전체가 매끄럽게 마무리됨으로써 차라리 인상 쓰지 않고도 완벽을 기할 수 있는 현재를 과시하듯 증명하고, 동시에 ‘굳이 티 내지 않아도’ 착실한 진보를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Only One’, ‘One Last Time’은 소녀시대의 앨범트랙을 즐기면서도 어딘지 아쉬워해야 했던 이들에게 단단한 자기중심과 강화된 세련미로 성숙을 보여준다. ‘Fan’은 분절과 덜컹임의 미학을 휘둘러온 프로듀서 켄지가 물 흐르듯 매끄러운 진행을 선보이면서도 분절이 갖는 음악적 효과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음을 시험한다. ‘Light Up the Sky’는 케이팝 일본 활동에서 국내로 (특히 걸그룹이) 이식하기 힘들었던, 당당하고 선동적인 발라드성의 미드템포로, 동종의 일본 활동곡들에 비해 달콤하지만 큰 스케일과 위엄을 소화할 수 있는 10년 차의 자신감을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케이팝의 원류들을 랜덤하게 양분한 뒤 한껏 유쾌하게 노는 듯한 ‘All Night’과 ‘Holiday’가, 좀처럼 주눅들 것 같지 않은 캐릭터의 소녀시대가 10년간을 쌓아 올린 즐거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햄촤: 첫 트랙 ‘Girls Are Back’의 전주 부분을 듣자마자 만족스러운 앨범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고, 청음이 끝날 때까지 그 감정이 유지되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 따로 또 같이 활동해온 그들의 서사와 맥락을 굳이 생각하지 않고 음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할 완성도 높은 앨범. 레트로한 사운드의 ‘All Night’과 ‘Party’의 속편 같은 ‘Holiday’를 비롯 딱히 빠지는 곡을 꼽기 어려우며 어떤 곡이 가장 좋은지를 골라내는 데에도 심사숙고를 거칠 만하다. 유닛 활동이나 솔로 활동에서의 데자뷔 현상을 일으키는 지점들이 곡마다 숨겨져 있어, 그간의 비-완전체 활동이 단지 각자의 커리어뿐만 아닌 최종적으로 팀워크 강화의 목표로서 수렴되는 듯, 파트의 역할이나 비중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목소리가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템포의 곡들이라는 점을 굳이 약점으로 꼽을 수 있을까. 앨범 중간에서 시원한 보컬로 귀를 트이게 해주는 ‘One Last Time’과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Light Up the Sky’만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묘: 리얼걸프로젝트의 릴리즈 중 비교적 무난한 케이팝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후렴의 멜로디 자체는 조금 예스럽기도 하지만, 트랩 성향의 비트가 이와 부딪히면서 낡은 느낌을 많이 중화해 ‘친숙한’ 것에 가깝게 만든다. 무난하게 흘려듣기 나쁘지 않은데, 이국적인 선법의 브레이크 삽입도 그렇고 음악적으로 뾰족한 구석은 없는 편. 어쩌면 리얼걸프로젝트로서는 오히려 딱 그 정도가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탁구에 비유한 밀고 당기기를 소재로 하는 것은 익숙한데, ‘선수치다’를 ‘I can win the game’, “넌 리시브나 해”로, 결국 “먼저 갈게 넌 연습이나 해”로 표현한 부분이 살짝 독특하다. 지시하는 바는 분명함에도 문득 ‘버려두고 가겠다’는 의미인 양 들리기도 한다. 만화적인 상황극과 안무가 교차하는 뮤직비디오는 안무의 포인트만을 짚어주고 가는데, 꽤 연극적이고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안무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무대에 비해서는 균형이 다소 불만족스럽다.
김영대: “녹색이 최고란 이념은 우린 지워 내야 돼”라니 무슨 뜻일까? 아무튼 유영진은 새로운 세상에서 이제는 희망을 본 것일까. 화석으로 발견된 것 같은 음악 스타일은 언뜻 촌스럽게 들리지만 전달하고픈 순진한 메시지에는 걸맞은 선택이다. 화려한 장치 없이 두 번을 번갈아 흘러가는 랩과 보컬의 이중주는 생각할 여지가 많지 않아 메시지 그대로를 차분히 받아들이게 한다. SM이 태용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별스럽지 않게 로컬리티를 살린 풍경을 뒤로하고 애니 같은 태용의 비주얼을 카메라 렌즈가 열심히 담아낸다. 가끔은 이런 곡들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심댱: 유영진이 세상을 용서해버린 걸까? SM의 새 얼굴 NCT 태용과의 듀엣으로 전달하는 긍정적인 메시지-‘상처를 극복하고 우리 함께 꿈을 꾸자’-는 이 곡이 ‘행복’을 잇는 SM의 브랜드 송일지, 아니면 2017년에 걸맞은 부드러운 SMP인지 헷갈리게 한다. 하지만 젊은 아티스트의 랩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함께’에는 그의 문제의식이 아직도 빛나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던 그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은근히 감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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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7년 8월 초순 ①”
소녀시대가 최고네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