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중순 발매된 아이돌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김주나의 데뷔작, 기희현&전소미&최유정&김청하와 유재석&엑소의 이색적인 콜라보 싱글을 비롯해, 다이아, 2PM, 브로맨스, 비투비-블루, 인피니트, 걸스온탑, 송지은의 새 음반을 다룬다.
유제상: 〈프로듀스 101〉 출신 김주나의 솔로 데뷔 싱글. 사실 해당 프로에서의 그녀에 대한 추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결국 평자는 이 노래로 그녀를 사실상 처음 접하게 되는 셈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알겠으나 왜 이런 방식으로 데뷔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싱글이다. 'Summer Dream'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교포 우승자 같은 방법론을 내세운 곡인데, 이는 팝송을 연상시키는 창법이나 가수의 꾸밈새 그리고 노래의 인디스러움을 통해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생경함이 어느 일면으로는 분명히 상업성을 지닌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 방법이 최선인가 혹은 이것이 김주나에게 어울리는 콘셉트인가에 대해서는 글쎄... 〈프로듀스 101〉 출신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기회가 자주 주어지고 있다는 점은 잘 알겠다.
햄촤: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색과 노련한 창법에 신인다운 신선함은 조금 약하지만, 강하게 뻗어 나가는 목소리엔 매료되지 않기 힘든 매력이 있다. 여름은 이미 지났음에도 오히려 요즘 같은 날씨에 더 어울리는, 무더웠던 지난여름의 좋은 부분만 추억하며 듣기 좋은 노래. 비슷한 장르의 기성곡들과 큰 차별점이나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데뷔곡으로서 좋은 선택이었는지 의문점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프로듀스 101〉의 후광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다음번엔 좀 더 확실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맞는 곡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
유제상: 앞서 들은 김주나의 싱글과 마찬가지로 〈프로듀스 101〉의 수혜를 입은 결과물. 먼저 11명의 활동이 차곡차곡 (그러나 다소 난잡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11명에 들지 못했지만 순위가 높은 순으로 싱글이 나오는구나 하는 망측한 생각마저 들 정도의 전개이다. 김주나가 크렌베리즈(Cranberries) 풍의 물 건너온 듯한 노래를 택했다면 희현의 경우는 정공법이랄까, 계절에 어울리는 달달한 곡을 선택했다. 평자 개인적으로는 희현의 곡이 더 마음에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의 진부함까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쪽이 상업적인 콘텐츠로 명민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조성민: MBK 특유의 2000년대식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와 정채연이 퍽 잘 어울려서 조금 놀랐다. 곡은 그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미디엄 템포의 가요인데, 봄에 발매되었다면 차트 좀 휩쓸었겠다 싶을 정도이다. 〈프로듀스 101〉 출신의 멤버들의 실력이 여타 걸그룹에 비해 월등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특히 래퍼 멤버들의 끼가 무대 화면 없이도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어서 놀랐다. 오랫동안 봐도 괜찮을 것 같은, 의외의 조합의 발견.
맛있는 파히타: 전작 '그 길에서'의 소녀 판타지가 채 잊혀지기도 전에 〈해리 포터〉를 차용해 신비주의 콘셉트를 시도한 'Mr. Potter'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케이팝 걸그룹 씬의 다른 팀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듯해서 썩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한다. 게다가 두 방향 모두 선행주자들만큼의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물론 평범하고 무해한 소녀들의 이미지는 아이돌 걸그룹 씬에선 언제든 통한다. 그러나 아직은 정채연을 제외하고는 팀도 앨범도 불분명해 보인다. 앨범 중간에 난데없이 자리 잡은 '화가'는 〈언프리티 랩스타〉로 이름을 알린 기희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것 외에 다른 기획의도를 찾을 수 있을까?
돌돌말링: 다이아의 가는 길은 점점 더 모호하기만 하다. 기왕 〈해리 포터〉를 가져온 콘셉트를 할 거면 (상표권 문제는 발매일을 미루고 커버아트 디자인을 약간 바꾸면서 피해간 듯하다) 좀 더 확실하게 써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레퍼런스의 쓰임새는 어중되고 몇 곡은 기본적인 리듬마저 놓친다. 타이틀곡 'Mr. Potter'는 마림바 사운드가 조롱조롱 귀를 잡아끄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결정적 순간 없이 흐릿하다. 기획 선에서 '청순여돌이니까 사운드적으로 진보적인 작품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고 지레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게 갈수록 음반의 만듦새를 헐겁게 만드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희현의 솔로트랙 '화가'의 존재도 앨범 전체로 보면 난데 없다. 디지털 싱글 등으로 따로 빼면 더 좋을 뻔했다. 며칠 상관으로 추가 발매된 '#더럽(The Love)'은 타깃이 분명한 팬송인데, 아무리 반전 말장난이더라도 팬송의 제목이 '더럽'이라는 건… 너무하다.
유제상: 쫓아가는 입장에서 기존 성공작들이 어떤 강점을 지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뜯어 보았다는 생각이 드는 EP. 특히 이러한 치밀함은 'Mr. Potter'를 들으면서 한층 더 극대화되는데, 노래의 튀는 감각은 레드벨벳을 비롯한 SM 계열 아이돌의 그것을 연상시키고, 안무는 카라나 걸스데이 같은 선배들을 떠올리게 하며, 뮤직비디오의 색채는 동시대의 결과물들을 적극적으로 참조하였다. 하지만 원본이 주는 느낌은 기저에 가라앉아 있을 뿐 모든 것이 다이아화(化) 되었기 때문에 흉내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이돌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지닌 '#더럽 (The love...)'도 인상 깊다. 정말 온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EP. 줄 것은 없고, 대신 귀여운 Pick을 드리겠습니다.
햄촤: 제목에도 가사에도 이렇게나 단도직입적으로 〈해리 포터〉를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안무나 의상, 뮤직비디오에선 굉장히 소극적으로 콘셉트를 소화하고 있다. 저작권을 의식한 것이라면 애초부터 인용을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여러모로 콘셉트의 과잉 또는 낭비 아닌가 싶은 타이틀 곡이다. 반면 수록곡들의 퀄리티는 좋은데, 기희현을 비롯한 〈프로듀스 101〉 참가 멤버들의 콜라보 곡이었던 '꽃, 바람 그리고 너'의 다이아 버전과 기희현의 랩 솔로 곡 '화가'가 귀에 들어온다. 특히 '화가'에선 "나이로 난 공경 안 해 그럴 바엔 버릇없는 아이돌"이라는 가사가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최근 걸그룹의 앨범에선 보기 드문 애티튜드라 더욱 뇌리에 남으며 그룹 안에서 또 한 명의 래퍼로서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 타이틀 곡은 아쉽지만 그룹이 성장해나가는 발자취를 확인하기엔 충분한 의의가 있는 앨범이 아닐까.
김영대: 관록이라는 상투적 단어를 한 번 쓰고 싶지만 그게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단순히 음악을 퍼포먼스의 영역에서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음악의 방향과 색을 설정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 완전히 개입한 이들을 다른 아이돌 그룹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기는 애매할 뿐 아니라 불공평하다는 생각뿐이다. 이 앨범은 2PM이라는 그룹에서 그간 누적된 경험치의 디테일(그것을 실력 혹은 노련미라 바꾸어 말해도 좋다)이 손에 잡힐 듯 시원스럽고 구체적으로 펼쳐져 있는 '만듦새'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편곡은 비록 최신 사운드에 기댔지만 코드 진행이나 전개 자체에 철저히 올드스쿨의 방법론과 아이디어를 차용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현대성과 복고 사이의 묘한 균형을 끌어낸 'Promise', 아예 대놓고 70년대 소울을 기가 막히게 레퍼런싱한 'Make Love'는 JYP 사운드의 지지자가 꼭 아니더라도 기분 좋게 반응할 수 있는 퀄리티 트랙들이다. 취향에 따라 다소 예스럽게 느낄 순 있어도 가사와 사운드의 연결 지점에서 그 나름의 음악적 설득력이 느껴진다는 점,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찬성과 택연 등 멤버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데뷔 8년 차 아이돌이 가지는 욕심과 책임이란 무엇일까를 새삼 곱씹게 만드는 앨범이다.
맛있는 파히타: 이제는 서서히 장수 보이그룹의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2PM이고 그 연차에 걸맞은 앨범이다. 퓨처베이스를 표방하고 있는 'Promise (I'll be)'는 여전히 거칠고 비장미 있지만 "Gentlemen's Game"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앨범은 전반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사운드로 내밀하고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어반 R&B 나 슬로우잼으로 부를 만한 곡들이 앨범을 축을 이루고 있고 'Make Love'와 'Can't Stop Feeling' 같이 본격적인 소울/훵크 넘버들도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아이돌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제는 더이상 마케팅 포인트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찬성이 작곡에 참여한 이 두 곡은 케이팝이라는 극단적 혼종에서 나타난 장르 근본주의적 접근이라서 신선한 충격이다.
돌돌말링: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좋다. 훵키하고 멜로디도 대체로 세련돼서 막힘 없이 들을 수 있는 웰메이드 팝 앨범이다. '젠틀맨스 게임'이라는 음반 제목답게 시종일관 댄디한 성인 남성 화자를 내세우는데,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이 기조가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곡들은 심심하지 않도록 R&B, 소울, 슬로우잼 등으로 적절하게 변주된다. 타이틀곡인 'Promise'는 독보적이라기보다는 다른 수록곡들과 비슷한 퀄리티로, 고르게 좋다. 다만 멤버들의 기여도가 높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그룹 색을 공고히 하는 데에 좋은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천곡은 '시도 때도 없이'. 한 번 듣고 반했다.
햄촤: JYP의 아이돌들이 성공하기 위해선 JYP라는 디딤대와 그의 아우라가 필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아이돌로서 또는 아티스트로서 그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JYP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어떤 공식이 확립되는 것 같다. 원더걸스가 그랬고, 2PM 역시 그러하다. 잠시 주춤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활동들, 또 공백의 시간 동안 그룹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을 해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화려하지도, 또 소란스럽지도 않은 방법으로 담담히 증명하는 앨범이다. 또한 그동안 관성적으로 받아들여 온 2PM의 이미지를 깨어주고 새롭게 환기하기엔 충분한 한 장이다. 그중에서도 귀에 걸리는 곡은 '향수'와 황찬성이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Make Love'.
유제상: 이색작 '여자 사람 친구'의 브로맨스가 '어장관리'라는 곡을 들고 복귀. 다소 진부한 제목과는 다르게 곡은 듣기 좋은 발라드. 훵키한 도입부가 평자 마음을 녹인다. 이런 류의 노래는 라이브로 매끈하게 부르기가 쉽지 않은데, 장기로 내세우듯이 실력파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면 앞으로의 평가가 더욱 좋아질 것 같다. 곡의 제목, 가사, 콘셉트가 좀 더 튀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음, 아마 만드는 분들도 멤버들도 상당히 진지한 사람들일 거야, 그렇다면 '어항에서 도망치겠다'고 선언하는 정도가 한계이겠지,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아니라면 죄송해요.
김영대: 엑소를 떠올리며 마치 연관검색어처럼 곧바로 따라오는 에지 있는 댄스 음악이나 풍성한 리듬앤블루스 넘버들을 떠올린다면 조금도 아니고 한참을 궤도에서 이탈해 있는 곡이다. 그러니까 이 곡은 엑소의 디스코그라피가 아니라 그저 유재석과 엑소의 단발 프로젝트라는, 즉 '목적부합송'이라는 개념 안에서만 이해되어야 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콜라보의 핵심인 주체들 개별의 매력과 서로에 대한 충실한 배려가 기분 좋게 소리로 들려온다.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듯 이 '쿵짝쿵짝 쉐킷쉐킷'의 단순하고 코믹한 분위기가 암시하는 그대로이다. 유재석은 그저 또 한 번 저력을 보였고, 엑소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데뷔 이후 가장 유쾌한 싱글을 얻었다.
유제상: "나는 어떠한 사전지식도 없이 이 곡을 들어 보았다. 사실 무한도전 멤버와 뭔가의 콜라보라고 한다면 사전 지식이 없어도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 우리에겐 경험이 있으니까. 경험과 시간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그 결과물이 어떨 것인지에 대한 짐작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 복고적인 분위기, 그러나 적당히 흥겹게 가기, 후렴구에서는 터뜨리기보다 변박을 활용하기... 장르는 달라도 'G.A.B.'니 'I got C'니 이것저것 나온 결과물들이 다 그런 거였잖아. 그럼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라는 시건방을 떨 수 있겠지. 진짜 슬픈 건 이런 진부함이 아니라 유재석과 엑소 정도의 이름만 있으면 이런 건 몇십 개든 만들어낼 수 있는 현실인 거고."
조성민: '무한도전 가요제'라는 장르가 생긴 건 아닐까. 'Dancing King'은 유재석이 이전에 발표했던 'Let's Dance'(퓨처라이거)나 'I'm So Sexy'(댄싱게놈)의 무드를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다. 심지어 유재석 파트가 아닌 부분에서도 무한도전 음원 특유의 맥락 없는 신남이 느껴진다. 유재석이 단순히 인기가 많다는 의미에서 '아이돌'로 비유된 적은 많았지만, 막상 진짜 아이돌의 옷을 입었을 때 발생하는 어떤 어색함이 관전 포인트. 엑소 멤버들의 의상에 각자의 상징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유재석은 '무한'이 적혀있어 엑소의 세계관 내에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햄촤: 유재석에게 굳이 엑소가, 엑소에게 굳이 유재석이 필요했을까 의문을 던지는 분들도 많을 테지만 세상 모든 일이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곡 자체의 완성도에 100% 합격점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개그로써 '댄스왕'이라는 무리수를 던져온 유재석의 캐릭터가 엑소의 고난이도 안무와 동선을 완벽하게 성취해내는 과정으로서, 엑소와 SM에겐 SM 스테이션의 다양성 확보로서 〈무한도전〉과 엑소가 서로의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흥미로운 이벤트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엑소와 〈무한도전〉 둘 모두에게 관심 없는 사람에겐 아무 의미 없는 싱글이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이보다 더 재미난 구경도 드물 것이다.
유제상: '이젠 비투비도 유닛 활동하고, 역시 효율적인 그룹 운영을 위해서 유닛은 필수인가' 하다가도 정통 발라드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도입부에 사로잡히고 마는 싱글. '내 곁에 서 있어줘'는 평자가 음악을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들었던 90년대 후반의 느낌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곡이다. 스트링의 한국적인 활용은 말할 것도 없고, 가사로 보자면 계속 반말 하다가 운율을 위해 후렴 마지막에 "~서 있어 / 줘요"하고 높임말을 쓰는 것도 매우 90년대 후반. 이 정도면 민요 수준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 전술한 바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세련됨은 단순히 복고적이라는 말만 하고 넘어가기엔 아까울 정도다. 참신함이 부족하여 Pick은 못 주지만, 곡 자체로는 이번 회차의 어느 것보다도 즐거웠노라 말하고 싶다.
조성민: 비투비에게 있어 정일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를 역으로 느끼게 된 싱글. 잘 만들어지고, 잘 불렀지만, 유닛의 색깔을 보여주기엔 기존에 해왔던 작업에서 래퍼 라인을 뺀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걸린다. 그동안 앨범 내에 있었던 유닛 트랙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노래를 잘하는 것과 좋은 노래을 만드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드러내준 예시라 하겠다.
김영대: 더도 덜도 말고 이들이 가진 매력의 절충형 확장 패키지라고 말하면 그 느낌이 가까울 것 같다. 이미 그 세계를 유영하는 이들이라면 딱 그만큼을, 이제 막 그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 다른 아이돌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음악들이다. 알면서도 속아줄 수밖에 없는 마이너 후크의 호소력을 뻔뻔하게 앞세운 '태풍'이나 'Zero'가 굳이 인피니트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Air'는 근래 인피니트가 내놓은 어느 곡보다도 밀도 있게 포착된 사운드를 과시하며 뻗어 나간다. 비록 건재함에 대한 안도감이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One Day'의 보편적인 매력과 함께 만나게 되는 호아랴는 새로운 송라이터의 발굴이야말로 이 앨범의 예상치 못한 성과로 남게 될 것 같다.
돌돌말링: 울림 아티스트 타이틀은 인트로부터 들어야 완성이다. 1번 트랙에서 2번으로 넘어갈 때의 기대감이 빵빵한 것이 참 좋다. 타이틀곡 '태풍'은 마침내, 인피니트 보컬들의 톤 정리라는 오래된 과제를 해결해낸 듯 균일하고 통일감 있다. (예전부터 성규로 대표되는 선명하고 날카로운 톤과 우현의 어둡고 둥근 톤이 한 곡 안에서 겉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성규가 시작하는 "다 끝났다"는 선언적 도입부는 독백하듯 평소보다 부드럽고, 동우를 거쳐 우현으로 넘어갈 때 전보다 소리를 선명하게 내서 에너지를 고조시키는 우현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후렴에서는 예의 성규의 날카롭고 피치가 정확한 보컬이 터진다. 이제껏 인피니트가 가져온 그룹 색은 지키면서, 변화에 대한 압박으로 무리하지 않은 좋은 스텝. 인기 작곡가들의 두 탕 세 탕이 많아지면서 점점 그룹 색이라는 것이 희박해져 가는 케이팝 씬에 좋은 프로듀싱의 예를 제시한다. 추천곡은 'AIR'.
유제상: 이제 아이돌 한 지도 7년 차인데 이들이 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라는 평자의 의문에 대한 돌직구 같은 답이라고 해야 되나. 인피니트가 좋았던 것은 국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가요의 좋은 점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건데, 이번 EP는 그게 뭔지를 평자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다소 과장된 듯한 비장함, 격정적인 스트링, 흐느끼는 후렴구와 절도 있는 마무리 등. 팝에서는 듣기 어렵고 가요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그러면서도 자칫 잘못 건드리면 또 하나의 SG워너비가 되어 버릴 것 같은 그런 점들이 타이틀 '태풍'을 비롯한 각 곡들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다. 어느 시점에선가 수록곡들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져 "내 꺼 하, 짜↗!" 같은 말초적인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지만, 이런 인피니트도 나쁘진 않다. 아니, 좋다.
조성민: '태풍'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톤다운 된 화면 가득히 죽음, 혹은 죽음에 비견되는 격렬한 감정의 동요와 처절히 싸우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인피니트는 언제나 직설보다는 은유를 통해 절절한 이별과 집착을 표현해왔는데, 인피니트의 은유란 '죽도록 사랑했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일단 죽은 상태에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감정적으로 가장 고요할 때 다가올 수 있는 죽음이라는, 우울의 끝을 달리는 이 정서는 '태풍의 눈'이라는 주제와 결부된다. 고요한 피아노음으로 시작해 격정적인 현악을 지나 우박이라도 맞는 듯한 강렬한 비트의 댄스 브레이크 파트로 넘어가는 것은 정확히 태풍을 뚫고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이별과의 사투를 은유하고 있다. 댄스 브레이크를 포함해 거의 모든 안무 파트가 태풍을 상징하는 원형의 군무 동선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담이지만, '안전 이별'이 화두인 시대에 과연 '위험하지 않은 남자의 집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조금 우려되었는데, 우려를 넘어 상당한 수작을 내놓아서 놀랐다. 앨범의 전체 트랙 또한 뻔하면서도 의외인 면으로 가득하다. 크레딧에서 스윗튠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지는 오래되었고, 심지어 이번에는 제이윤 또한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놀랍도록 인피니트의 초기작 트랙들을 닮아있다. 'AIR'와 같은 전형적인 EDM부터 'One Day'처럼 깔끔하게 쓰인 모던록까지, 아주 뻔하지만은 않은, 하지만 '가요'의 미덕을 겸비한 트랙들이 인피니트의 색깔을 띤 채로 잘 갖춰져 있다. 언제나 딱 한 발짝, 딱 그 만큼씩만 꾸준히 발전해 나가는 일.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들지만 소명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을 인피니트가 해내고 있다.
햄촤: 전주부터 기이한 긴장감이 맴도는 타이틀곡 '태풍'을 시작으로 마지막 트랙까지 강렬하게 몰아친다. 인피니트가 그동안 보여온 다양한 색깔을 총집편처럼 담아내 EP임에도 정규 같은 볼륨감을 지닌 앨범. 여태까지 인피니트가 어떤 그룹이었는지 알 수 있는 동시에, 앞으로의 인피니트가 어떠한 그룹이 되어갈 것인지도 엿볼 수 있는, 팬들에게는 주변에게 영업하기에도 적절한 앨범이 아닐까 싶다. 수록곡 중엔 흥겨운 비트의 'True Love', 어쿠스틱한 사운드 위에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다가오는 '고마워'가 인상적이다. 여담이지만 '태풍'이 유난히 귀에 걸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인피니트에게 관심을 가졌던 노래가 'BTD'였기 때문인 것 같다. 취향은 속일 수 없나 보다.
돌돌말링: 걸스온탑의 두 번째 싱글. 개인적으로는 이 곡으로 걸스온탑을 처음 만난다. 공식 채널에서 제공하는 뮤직비디오는 말로는 뮤직비디오라는데 노래가 거의 나오지 않고, 콘셉트 비디오로 이해하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면접관 앞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는 스토리가 어찌 보면은 뻔해서 기대가 높지 않았는데, 막상 전곡을 들어보니 무난하게 듣기 좋도록 잘 뽑은 블랙팝에 멤버들의 가창력이나 하모니 합이 굉장히 좋아서 "어?"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가 기대되어 디스커버리를 달았다.
유제상: 오, 걸스온탑이 다소 진부했던 전작에 비해서 귀에 쏙 들어오는 신곡 '꿈을 잃고 싶지 않아'를 들고 돌아왔다. 기본적으로 흑인 음악을 하는 팀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애시드한 노래를 내어버리면 평자의 평가가 확 올라갈 수밖에. 다만 가사는 청춘들의 애환을 담았다고 하는데 사용되는 키워드들이 좀 과했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더 추상적으로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데 평자처럼 심약한 사람은 끝까지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절절하다. 보노라면 극단적인 계약직이면서도 면접관의 자리에 드문드문 앉을 때가 있는 평자의 팔자가 떠올라서 가슴이 아리다. 훌쩍.
햄촤: 취준생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라는데 은유법이 아니라 '스펙', '자소서'같은 단어를 마치 날 것의 재료를 넣은 요리마냥 툭툭 가사에 썰어 넣었다. 직설법인 만큼 더 강하게 와 닿는 부분도 있지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내가 틀린 게 아냐 나는 다른 것뿐야"라는 가사는 다소 무책임한 지점으로 노래의 메시지를 끌고 가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 같다. 잠시 동안의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 노래를 들은 후엔 다시 자소서를 쓰고 취업을 준비해야만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기에. 뮤직비디오는 왜 노래를 중지하면서까지 연기로서의 면접 장면을 넣었는지 의문이 드는데, 차라리 실제 취준생들의 심정을 짤막하게 인터뷰로 담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유제상: '예쁜 나이 25살' 이후로 간만에 돌아온 송지은. 'Bobby Doll'은 전작의 기조를 이으면서도 제이팝적인 색채가 더 강해졌다. 좀 차별화된 점을 든다면 도입부에 중독성이 강한 허밍이 등장한다는 것 정도? 흥미로운 것은 송지은의 변화로,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는 얼굴이 묘하게 어려졌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창법도 비음이 강해져 흡사 'Havana'를 부르는 아이유를 연상시킨다. 본인의 의지인지 만드는 쪽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묘한 변화. 그리고 콘셉트가 바비 인형으로 잡혀 있는데, 이는 평자 입장에서 지양해야 할 무엇이므로 이를 지적하고 넘어간다. 평자는 여성=아름다움=인형=수동적...의 기이한 도식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싸우련다. 뭐 진짜로 몸을 써서 싸우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 왜...
조성민: 가인이 아이유를 따라가는 동안, 송지은은 가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섹시 스타'의 길을 밟고 있는 전효성과 달리 송지은의 행보는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는데,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 때문일까 싶다. 가사는 조금 여성혐오적이지 않나 싶긴 하지만, 오히려 제목부터 무대 연출까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마론 인형을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취향에 맞추려고 한 것 같아서 가사 속 화자의 스탠스가 조금 헷갈릴 정도. 앨범에서 수록곡들이 서로 색깔과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점도 편하게 들린다.
햄촤: 송지은이 '바비돌'로 이미지를 포지셔닝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한 결과물이다. 노래보단 'Barbie'라는 이름을 차마 쓰지 못해 'Bobby'라는 남성 이름으로 제목을 지어버린 아이러니가 재밌는데 차라리 이에 착안해서 발상을 뒤집어 남자를 자신의 '켄'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내용의 가사였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뮤직비디오의 서사는 또 '인형 같은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래저래 뭘 하고 싶은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전체적인 선곡이 가수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 회사 차원의 상업적인 전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애매한 지점을 오간다는 인상이고, 그 이유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한 번쯤은 어중간한 중심에서 벗어나 확실한 방향을 정해서 기울어져 보는 건 어떨까. "하고 싶은 걸 해봐요 즐겨요 인생 뭐 있나요"라는 '괜찮아요'의 가사처럼 말이다. 그녀의 음색에 가장 어울린다 싶은 곡은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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