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Listen : 2016년 9월 초순

2016.09.01~09.10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9월 초순 아이돌 신보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허각&플랜에이보이즈, 브레이브걸스, 케이&면도, 헤일로, 레드벨벳, 바비, Mino, MOBB, 가인, 크레용팝의 새 음반을 다룬다.
허각, 플랜에이보이즈
'Plan A' Second Episode
플랜에이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1일

   

아무래도 익숙한 허각의 목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오다 보니 노래 전체를 편안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과연 이것이 신인 그룹을 대중에게 알리기에 효과적인지는 모르겠다. 신인 아이돌 그룹의 데뷔 프로모션에 같은 회사의 기성 가수와의 콜라보 작업으론 피에스타와 아이유의 경우가 떠오르는데 결과적으로 이 역시 썩 효과를 보진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역시 화사한 분위기에 비해 썩 치밀하게 계산된 편은 아니라서 결국 랩 하는 친구(찾아보니 이름이 도한세라고 한다)의 얼굴만 기억에 남아버렸다. 의도야 어쨌든 허각의 노래에 신인 그룹 몇 명이 피처링한 모양새로 보이는데, 음원 차트에 한 번이라도 더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중요한 요즘에 아무렴 어떠랴 싶기도 하고.



브레이브걸스
유후 (우린 아직 여름)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1일

   

왜 냈을까. '하이힐'이라는 걸출한 여름 트랙을 내놓고 이렇게 2016년 여름을 흐지부지 마무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번 뮤직비디오에서 코스프레도 잔뜩 했잖아요. 비키니가 그렇게 중요하던가요... 브레이브걸스는 늘 '용감한 형제가 아끼던 곡을 다른 가수 안 주고 자회사 걸그룹을 줬나 봐' 싶도록 좋은 곡들이 많았는데, 이번 싱글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늘 쓰던 브라스, 늘 쓰던 구성, 흔한 멜로디.

곡의 콘셉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는데, 아무리 아직 날이 덥더라도 추석이 코앞이건만 여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건 아무리 봐도 '나올 때를 놓쳐서 이제야 나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래는 한때 AOA가 부르던 어느 지점을 연상시키는데, 이 미묘한 예스러움이 트렌드에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여 안쓰럽다. 안 좋은 내용 잔뜩 써놓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브레이브걸스는 미인도 많고 라이브 무대의 퍼포먼스도 나쁘지 않다. 다만 뭔가 방치된 것 같은 이런 콘셉트와 곡들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케이, 면도
Y
로엔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2일

   

케이의 보컬은 얼핏 음색만 듣자면 프리스타일의 원곡에서 들었던 보컬과 그다지 큰 차별점을 만들진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덤덤하고 무심하게 흘러가던 원곡의 분위기에 비해 새로운 'Y'는 전에 없던 포인트들을 만들고 거기에 주목하게 하는데, 이렇게 한껏 힘을 주어 연출한 신곡에 케이의 보컬이 잘 어울리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최선도 최악도 아닌,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길을 택한 느낌이랄까. 세븐틴에 이어 아이돌과 계범주의 궁합이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던 싱글이기도.



헤일로
Happy Day
하이스타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2일

   

"Happy Day"라는 제목만큼 앨범은 시종일관 신나고 경쾌한 템포를 유지한다. 그 이미지를 압축시켜 완성하는 건 예상대로 타이틀곡 '마리야'.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야 /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말이야" 같은 가사는 심히 진부하지만 앨범 대부분의 곡을 담당한 작곡팀 오레오 특유의 상큼함이 극에 달한 팝록 사운드에 그럭저럭 녹아든다. 아직 신인 딱지를 떼지 못한 보이 그룹의 미니앨범으로 나쁘지 않은 퀄리티이지만 곧 데뷔 3년 차를 앞둔 시점에서는 좀 더 과감한 도전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오레오의 작업에 있어서도, 이기용배의 약간 '미쳐 있던' 부분은 전부 용배 쪽의 파이였나 싶은 의구심이 들게 한다.

마리가 나왔으니 김신우의 '마리'를 언급할 수밖에 없겠네. 이현세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아마게돈〉(1996)의 주제가로 애절한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아마게돈〉을 못 본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하긴 좀 그런데, 극 중 등장인물인 마리는 뭔가 여주인공 포스를 풍기지만 등장한 지 몇 분 안 되어 죽는다... 뻘소리를 잔뜩 적는 걸 보니 헤일로의 EP가 평자에겐 그만큼 별로였던 모양이다. 최근 이들이 괜찮은 곡들을 뽑아내었던 것에 비해 타이틀인 '마리야'는 그냥 흥겹기만 할 뿐 특징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친구와 애인 사이에 무성의한 갈등을 하는 화자를 다룬 가사 정도인데... 젊은이여 관계가 애매하면 창피를 무릅쓰고 그냥 질러라. 그게 뭐 여기저기 노래 가사로 다룰 만큼 중요한 고민이라고 쯧.



레드벨벳
Russian Roulette
SM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7일

   
이번 회차의 추천작

레드벨벳은 지난 몇 년간 아이돌 파워하우스인 SM에서도 유난히 고른 품질의 음악을 쏟아내는 중이다. 이번 EP 역시 (좋은 혹은 그렇지 않은 의미에서 모두) SM의 타이트한 시스템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인상은 동일하다. 8비트 게임기를 연상시키는 디스코 리듬의 음원과 파형 쪼개기 스타일의 보컬 왜곡 모두 귀를 살살 간지럽히는 'Russian Roulette'은 특별한 와우팩터가 없이 간결한 구조가 가진 미학만을 충분히 반영해 만든 트랙이다. 그런가 하면 'Lucky Girl', 'Bad Dracula'는 전작들처럼 키치즘과 소울풀한 보컬을 조화시켜 레드벨벳의 시그니처 사운드임을 한껏 시위하고 있고, 최근 NCT를 비롯해 탁월한 곡을 꾸준히 써내고 있는 Andreas Oberg의 손이 닿은 'Sunny Afternoon'은 웬디의 여성적인 보컬의 매력이 한껏 드러난 사랑스러운 곡이다. 음악적으로 특별히 흠을 잡기 어려운 훌륭한 팝 앨범이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데뷔 이후 괴이한 레드와 우아한 벨벳 양쪽에서 당기는 힘에 줄곧 팽팽하던 고무줄이 '탕' 소리를 내며 끊겼다. 다섯 명의 소녀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여전히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지만, 그 표정은 이제 자신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닌 외부의 시선에 맞서는 대응기제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방향전환이 주는 충격과는 상관없이 타이틀곡 'Russian Roulette'은 무척 훌륭한 팝 넘버다. 산뜻한 멜로디와 장난스런 칩튠 사운드의 조화, 적당한 무게를 유지하면서도 속도감을 잃지 않는 리듬 파트와 귀신처럼 밀고 당기는 코러스까지 잘 만든 걸 팝의 정석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다른 곡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SM산 앨범들의 준수한 수록곡 라인을 잇는 'Bad Dracula', 'Some Love' 같은 노래에서 'Sunny Afternoon', 'My Dear'처럼 90년대 활약하던 1세대 걸그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곡들까지 걸 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한 장이다. 문제는 그간 이들이 고유의 색깔처럼 입어왔던 '어딘가 알 수 없는 특별함'을 벗은 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느냐다. 데뷔 이후 몇 번이나 반복된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본다. 레드벨벳은 과연 어디로 향하는가.

이번 회차의 추천작

평자의 본업은 대학 강사이고 지난 8년 동안 같은 일을 해왔다. 오늘은 용인에 수업이 있어 다녀왔는데, 다섯 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동안 이 EP 하나만 듣고 다녔다. 매년 취향에 맞는 곡들을 선별해서 내주시는 SM에게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뭐가 취향에 맞느냐고 물어본다면 우선 타이틀인 'Russian Roulette'이랑 네 번째 트랙 'Sunny Afternoon'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My Dear'가 그러하다. 특히 'My Dear'는 윤상을 위시로 한 90년대 뮤지션계의 향취까지 묻어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곡을 듣다가 무료함이 느껴지면 보는 'Russian Roulette'의 뮤직비디오 또한 취향에 딱 맞는 물건이다. 멤버들의 과장된 장난질도 눈에 띄지만 뭐니뭐니해도 좋은 것은 짧은 팔다리를 끊임없이 놀리며 춤을 추는 아이린. 〈안녕 우리말〉에서 "내 이름은 아이린, 미녀 탐정이죠!"의 아이린이 진짜 아이린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그걸 능가하는 아이린이 있다. 픽!

두 가지 맥락의 의문이 생겼다. 먼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걸그룹이 범람하는 현 상황에서 '레드벨벳'을 어떤 색깔로 인식해야 할까. 노골적으로 말해, 이번 앨범의 트랙들이 다른 걸그룹의 곡들 사이에서 틀어졌을 때 얼마나 독보적으로 들릴까. 팬들이 염원하던 'Red' 콘셉트로 돌아왔다지만, 어쩐지 레드벨벳의 색깔은 더 옅어져 있다. 둘째로, 그룹의 색깔만 남기고 그 안에 있는 멤버 개개인의 색깔을 지우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Russian Roulette"에는 '행복'에서 고음을 찌르며 존재감을 표출하던 웬디도 없고, 'Ice Cream Cake'의 도입부를 시원하게 열어주던 슬기도 없다. 설상가상, 'Dumb Dumb'까지만 해도 꽤 아이코닉했던 안무가 'Russian Roulette'에서는 그저 소녀시대의 '훗'을 재연하는 데에 그친 듯한 인상을 준다. 아이돌의 주된 콘텐츠 중 하나가 멤버 각자의 캐릭터와 그에 맞춘 롤플레잉,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관계 구도나 에피소드 따위임을 감안할 때, 레드벨벳은 이 점들을 강화하고 진행시키는 방향보다는 축소하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여기에 심지어 그룹 자체가 씬에서 갖고 있던 영역과 캐릭터, 역할마저도 모호해지고 있으니, 확실히 위기라 할 만하다. 어쩌면 이번 앨범이 이전작 "The Velvet"보다 더 위험한지도 모르겠다. 아이돌 제1의 생존 원칙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때 아닐까.



바비
The MOBB
YG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7일

   

바비가 재능있는 래퍼인 것은 분명하다. 매우 빠르고 복잡한 비트의 전환에서조차 그는 매우 능숙하게 명료함을 유지해 낼 수 있는 테크닉을 가졌다. '꽐라'는 확실히 본인의 장점이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요점 정리한 트랙이다. 혼란스럽게 이런저런 단어들을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던져대며 꽐라라는 주제와 호응시키는 아이디어도 훌륭하다. 긴장감을 쌓아가는 트랩의 공식, 오토튠으로 마무리한 후렴 모두 그 어울림이 그럴듯하지만 다분히 공식적인 느낌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곡의 전개나 목소리 톤을 바꾸는 단계단계가 딱 예상한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는데, 제목처럼 꽐라스럽기보단 오히려 단정하기만 하다. 조금 더 어긋나 있어도 좋겠다.

'꽐라'는 기본적으로 레게의 중얼거림 같은 것을 광포하게 바꾼 곡인데, 난잡함은 의도된 것이라 쳐도 이게 어떠한 타깃을 지향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남는다. 사실 최근의 YG産 노래 전반이 그러하다. 디테일은 여전히 살아있는데 ① '외국에서 이러이러한 게 유행하니 우리도 즐겨보자'도 아니고, ② '최근 트렌드가 이러하니 적극 반영하겠다'도 아니고, ③ '팬시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우리식 음악을 즐겨달라'도 아니니 말이다. 이 싱글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②인 것 같기는 한데 그럼 또 내 안의 힙합에 대한 증오가 커지게 되잖아.



Mino
The MOBB
YG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8일

   

빅뱅은 이미 찹쌀떡을 그렇게 흥겹게 외쳐댔는데 새삼 찰떡궁합이 가사에 올려진다고 그리 대수겠냐지만 '눈코입'이라 풀지 않고 그저 '몸'이라고 잘라 말하는 솔직함에는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첫 신스 음이 똑똑 떨어지다가 코러스 파트로 넘어가는 전개는 깔끔하고 대중적인 호소력도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반복적이고 단촐한 전개지만 단속적인 효과음으로 재미를 주는 곡 자체의 구성은 납득이 간다. 느긋한 비트 위에 에로틱한 가사를 과장되지도 애매하지도 않게 풀어내는 모습에서는 스토리텔러 송민호의 잠재력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꽐라'랑 비교했을 때 더 솔직한 곡이긴 한데 그게 곡의 장점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꽐라의 평에 써놓았던 구분으로 말하자면 ①에 가깝지만 딱히 레퍼런스 같은 게 있다고 이야기하긴 또 어렵고... 모르겠다. 이 곡이든 저 곡이든 YG의 (평자가 정말 싫어하지만 어찌 되었건 세일즈 포인트가 되는) ③은 어디로 간 거야.



가인
End Again
에이팝 엔터테인먼트,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9일

   

브로드웨이적 총천연색 상상력으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맞붙여 놓은 첫 두 곡은 분명 이 신작의 핵심이다. 관능과 순수라는 양면을 버스 단위로 뒤집고 또 뒤집는 목소리의 매력은 'Carrie'에서 조금 더 빛난다. 갸우뚱한 것은 김이나-이민수 콤비의 자기 복제가 누구나 그 의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그려지는 'Carnival'이다. 곡뿐만이 아니라 보컬의 세부적인 어레인지먼트에서 2013년의 문제작이었던 '분홍신'의 콘셉트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다는 것은 문제라 할 수 없겠지만 하필 그게 왜 또 다른 스타일리스트인 '가인'을 통해서였는지라는 질문은 남는다. 어떤 음악적 의도나 콘셉트도 무리 없이 대응하는 보컬리스트 가인의 매력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분명 상상한 것 이상은 아니다. "Begin Again"이 나와봐야 조금 더 그림이 분명해질 것 같다.

김이나 이민수 콤비가 2011년 아이유 "Last Fantasy" 앨범으로 이미 모두 보여줬던 것들을 또 냈다. 달라진 것은 그때의 아이유는 미니스커트 원피스를 입었고 지금의 가인은 레오타드를 입었다는 것뿐. 가사 세계조차 써니힐의 '미드나잇 서커스' 등으로 봤던, 마지막 밤을 광기 어린 축제처럼 즐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세계와 비슷하다. 심지어 이번 타이틀곡 'Carnival'은 그런 가사가 톤 조절이 잘 안 된 너무 밝은 멜로디 및 사운드와 부딪혀 어울리지 않는 신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김-이 콤비를 꾸준히 좇은 팬이라면 리얼 악기를 치밀하게 배치하고 배열해서 사운드가 더 풍성해졌다는 점을 높이 살 수도 있겠지만, 가인이란 가수를 기대한 입장으로서는 아쉽다. 어른을 위한 동화에 좀 더 배리에이션이 필요하다.

자기복제란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Carnival'의 특정 프레이즈들은 '분홍신'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킨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곡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미학적 실패가 아닌 기술적 혹은 전략적 실패일 수 있다. (인용을 논하라면, 차라리 〈백 투 더 퓨처〉가 도식적이진 않은가?) 그러나 지나간 이별을 두고 찬란한 업템포의 카니발을 펼치며 페이소스 섞인 위로를 건네다, 그 사랑과 그 속의 자신은 아름다웠다고 긍정하는 노래는 가인만이 불러낼 수 있는 황홀한 아이러니다. ('분홍신'의 '인용'이 선택된 이유에 대한 힌트이기도 하다.) 'Carnival'은 또한 가요계 오케스트레이션에서 답보 상태에 있던 관악기의 사용이 멋지게 페이지를 넘기는 장면이기도 하다. 초조하니까 반주는 잠시 비켜 보라는 듯이 감정과 말을 쏟아내다가는 역시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날아올랐다 내려앉아 버리는 '반딧불이의 숲'도 매혹적. 음반은 으르렁거리던 전작들과 '피어나'의 균형을 꾀하며 가인 식의 '사랑스러움'을 꿰어내고, 거기엔 'Carnival'에서 잘 드러나는 가인의 저음과 '너무 고급스럽지 않은' 생소리가 주효한다. 분명 이 '사랑스러움'이 전작들에 비해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가인이 사랑스러우면 안 된다고 누가 말한단 말인가. '손타킹'을 사랑했으나 스스로를 아름다웠다 자신하는 가인은 불편한 사람들?

'아티스트 흉내'라고까지 폄하할 건 없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가인의 솔로 활동은 일관된 콘셉트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고 말할 수 있겠다. 폭넓은 섹시 콘셉트 같은 걸 한가운데 세워 놓긴 했는데 그건 가장된 거니까 뭐... '진실 혹은 대담'의 섹시 가인이 현실의 가인이라고 느끼는 수용자가 얼마나 있었을까. 그간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런 가장된 섹시 콘셉트는 만드는 쪽에서도 반쯤 즐기면서 하는 거 같고. 여튼 솔로 활동이 장난은 아닐 테니 어느 정도의 상업적 성과는 당연히 나야 할 터. 이 EP는 '성과가 나야 해!'라는 안타까움이 반영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End Again"은 좋게 이야기하면 기존 곡들에 비해 대중적인 결과물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창작자들의 자기복제가 범람하는 무엇이다. 일례로 타이틀 'Carnival'을 들으면 귀가 있는 자는 누구나 아이유의 '분홍신'을 연상할 것인데 감흥은 그에 비해 무지 소략하다. 그 이유는 곡이 담고 있는 진정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분홍신'은 길을 잃은 사람의 다급함이 있고, 'Carnival'은 그냥 길을 잃었다. 이 EP도 그러하다.

동화적인 분위기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브라스 사운드, 성대에 힘을 잔뜩 줘서 얇고 앳된 음색을 내는 창법, 핏기없는 피부에 과하게 강조된 블러셔, 몸매가 드러나는 란제리룩. '노출'에 대한 정도 차이를 제외하면 너무 놀라울 정도로 아이유와 닮아 있다. 가인과 아이유의 음색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이미 아이유 "Modern Times"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 드러난 바 있었는데, 서로 교집합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교집합 외에도 존재해 왔던 차별점을 줄이는 방식으로 연출된 것이 아쉽다. 가인이 이 앨범과 안 어울린다거나 소화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아쉬운데, 그렇다면 충분히 넘치는 가인의 개성과 능력으로 굳이 다른 가수와 비슷한 앨범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규 앨범의 나머지 반에 '정답'이 마련되어 있길 기도한다.



MOBB
The MOBB
YG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9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그간 YG의 새 세대에 느낀 불만은 '아저씨들에게 어필하느라 할 것을 못 한다'는 점이었는데, 이제야 속이 뚫리는 것 같다. 세 장의 싱글 모두가 술이라는 주제로 연결돼 있는 점이 '아이돌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나, 여성혐오나 형사범죄가 아니라면 '거친 젊음'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용인되는) 가장 적당한 지점이긴 하다. (물론 이것이 사회적으로 적확해지는 건 "아무나 다 섞여" 술 마시는 것 외에는 문화랄 게 없는 한국의 현실 탓이기도 한데, 이건 YG나 미노 & 바비의 책임은 아니다.) 아저씨 시선의 라인들은 '디지털 신문물'을 챙기는 몇 라인으로 제한된 채, 기세를 쏟아부으며 현실의 영역에서 '지저분하게' 놀아제끼는 트랙들은 두 멤버의 기량과 캐릭터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드디어!) 소속사 선배들과도 차별화를 이룬다. 이는 일정 부분 '아이돌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으나 아이돌 같은 구석도 있는' 영역을 탐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도 한데, 사실 그것이 원래 YG의 노선이기도 했던 점을 생각하면 이 트랙들이 종종 YG의 레거시를 슬쩍 내비치는 것도 흥미롭다.

위너 송민호와 아이콘 바비가 각각 이루었던 성취를 감안할 때, 기대에 비해서는 조금 뻔한 결과물이 나왔다. 그동안 YG에서 나왔던 모든 유닛들이 그랬듯이, 원래 각자의 그룹들이나 소속된 레이블의 색깔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예상되는 방향 안에서 큰 폭발력을 발휘한다거나 하지도 못한다. 비슷한 색채의 유닛 '블락비 바스타즈'가 갖고 있던 의외성에조차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 그나마 '빨리 전화해'의 무드가 빅뱅의 데뷔 초기 '아이돌 시절'을 연상케 해서 이 유닛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근거가 되어주고는 있지만, 확실히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 YG이고, 위너이고, 아이콘이니까.



크레용팝
부릉부릉(Vroom Vroom)
크롬 엔터테인먼트
2016년 9월 9일

  

본격적인 유로 디스코의 격하면서도 어딘가 설렁설렁한 느낌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저예산의 질감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기합 없는 버스와 찔러대는 코러스로 양분된 보컬은 크레용팝의 캐릭터성과 포지셔닝을 잘 반영한다. 아저씨들에게 통할 법한 행사장 트로트풍의 가사 소재와 소녀성을 강조하는 치기 어린 의태어들이 강력한 노림수로 자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 대체로 이런 조합은 불편함을 가득 안기기 딱 좋을 것이지만, 시장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소녀성 어필의 양태와는 (어찌 보면 5년 정도 낡은 듯한) 다른 노선이고, 무엇보다 크레용팝이기에 밉지 않게 들린다. 격정적인 활기도 크레용팝에겐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 선공개 곡에서 예리하게 드러나는 '대충인 듯한' 매력 역시 더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멤버 웨이가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오랜만에 발표하는 신곡인데, 생각 이상으로 가사의 센스가 진부해서 오히려 귀가 열린다. "심장이 뛰는 속돈 벌써 아우토반"과 "거칠 게 없어 우리 사인 하이패스"의 대구는 차라리 중장년층을 겨냥한 트로트에 적합한 느낌마저 드는 가사다('어이'로 본격 트로트를 표방한 적도 있는 만큼 계산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장 아쉬운 점은 신나는 댄스를 표방한 노래치고는 비트가 유난히 빠른 것도 아닌 데다 전반적으로 노래가 예상을 벗어나는 요소 없이 무난하게 흘러간다는 점인데, 또박또박 정박으로 부르면서도 서서히 듣는 이의 흥을 고조시켰다 후렴에서 터트리던 '빠빠빠'의 매력을 '부릉부릉'에선 찾기 힘들다. 아직 음원만 들어보았기에 노래의 매력을 100% 접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착한 소녀의 이미지만 가득한 음악 방송에서 '츄리닝'을 입고 건들대던 '빙빙' 때의 매력을 무대 위에서 다시 한 번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ditor

Auth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http://twitter.com/idologykr
http://facebook.com/idologykr

Share This Post On
Logo Header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