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의 새 음반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여자친구,제니씨,브로맨스,김희철&김정모,솔라,스누퍼,라비,라임,제타,디오션,스텔라,FT아일랜드,헬로비너스,조미,비트윈,레이샤를 다룬다.
김윤하: 보통 열 곡 정도 담긴 앨범을 만들다 보면 의식적으로 쉼표도 찍고 괄호도 넣고, 어떻게든 템포와 리듬에 변화를 주고자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첫 정규앨범에서는 그런 브레이크의 저항이 거의 전혀라 해도 좋을 만큼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발라드나 미디움 템포 곡이 있느냐 없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기운의 동력이 데뷔부터 쉼 없이 정상을 찍어온 대세의 기운인지 아니면 여자친구라는 그룹이 타고난 에너지인지는 아직 조금 더 두고 보고 싶지만 지금 이토록 선명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우선 의미를 두고 싶다. 기존의 '파워청순' 노선을 이어가는 '너 그리고 나'와 '바람에 날려', 여름이라는 계절감에 충실한 '한 뼘'과 '물꽃놀이', '지금'의 걸 그룹이 소화해낼 수 있는 다양한 레이어를 차분히 시도하는 '나침반'과 '찰칵' 등 보고 듣고 즐길 만한 것들이 가득한 놀이동산 같은 앨범이다.
미묘: '학교 3부작'을 발전시키거나 다른 데로 데려가는 작품은 아니다. 차라리 향후에 대한 유예에 가깝게 들린다. 멜로디에서 동어반복이 신경 쓰이는 것을 제외하면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다. '너 그리고 나'가 옛 가요의 향취를 가미하다 못해 (조금 빠르게 돌린) 옛 가요 그 자체로 들리는 것은 아쉬운 일. 뮤직비디오도 내내 한 걸음 더 나아갔다가는 발을 뺀 듯한, 고민이 엿보이면서도 매번 조금씩 아쉬운 맛을 남긴다. 아무도 쓰지 않을 만큼 뻔한 것에서 참신함을 이끌어낸 '시간을 달려서'와 '오늘부터 우리는'의 거의 기적적인 기획력을 생각하면 이보다는 좀 더 기대했으니 말이다. 예의 절박하고 치열한 정조를 중심으로 앨범은 때론 산뜻하고 가볍게, 때론 수수하게, 여자친구가 표현할 수 있는 소녀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간다. 수록곡들의 다양한 주제와 의도를 소화하는 방식이 다소 단선적이라, 꼭 맞는 옷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아직은 많지 않다. '여자친구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납득되기에는 좀 이른지도.
유제상: 확신한다. 이기, 용배는 사거리에서 아이돌 음악의 악마를 만났다. 그리고 영혼을 담보로, 1위 하는 곡 만드는 비법을 얻었다. '너 그리고 나'가 진부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들은 극히 불가능한 무언가를 이뤄냈으니까. 그래서 픽.
햄촤: 타이틀곡 '너 그리고 나'는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기존의 스타일을 심화시키는 굳히기처럼 들려 익숙한 느낌이면서도, 어딘가 완성된 곡을 1.3배 정도로 돌려놓은 것 같은 빠른 템포엔 적응하는 데에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인트로와 '너 그리고 나'의 인스트루멘털 트랙을 제외하면 총 10곡으로, 취향만으로 따지면 타이틀곡보단 수록곡들에 더 애착이 간다. 여름에 듣기 딱 좋은 레개 리듬의 '한 뼘'같은 곡도 있고, 여자친구다운 상큼함을 내뿜는 '물꽃놀이' 등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퀄리티와 변별력을 갖춘 곡들로 채워져 첫 정규앨범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곡은 나도 모르게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고 싶어지는 가사의 '나침반'.
유제상: 이제 아이돌이 힙합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건만, 이 EP는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True be honest"는 '탑독 출신의 제니씨'라는 꼬리표를 지워 버리면 선입견이 생길 요인이 전혀 없는 견실한 곡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언더 힙합의 EP처럼 느껴지는 거친 면이 없잖아 있지만, 품질이 심각하게 조악하진 않으며 이 정도면 용인 가능한 수준이다. 타이틀 'Disillusion'을 비롯하여 가사들이 지나치게 사변적이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뭐... 더 좋아지겠지.
유제상: 기이한 팀이름에 기이한 데뷔곡 제목. 해서 이들은 뭔가 하고 들어보니 전혀 뜻밖의 훵키한 노래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타이틀 '여자 사람 친구'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나 시크 등등의 엄청나게 많은 디스코 레퍼런스를 호명하지만, 후렴의 가요풍과 맞물리며 다소 평이한 형태로 마무리된다. 보도자료를 보자면 라이브에도 자신이 있는 듯한데, 이제 빵빵한 EP를 바탕으로 〈불X의 명곡〉, 〈복X가왕〉 등에 나와 지명도를 높이는 걸까? 여튼 이후의 움직임이 기대되는 그룹.
햄촤: 그룹의 이름만 보고 뭔가 좀 더 느끼하고 끈적한 느낌의 곡을 부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깔끔한 R&B 스타일의 보컬 그룹이라 놀랐다. 설마 이런 반전효과를 기대한 그룹명이었을까? 타이틀곡 '여자 사람 친구'는 '늘 곁에 있던 친구가 이성으로 보인다'는 서사로 제목에 비하면 가사에 특별히 신선하다 할 부분이 없어 아쉽지만, 어딘가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 곡을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매끈하게 빠진 사운드만큼은 거부하기 힘들다. 90년대 말 반짝 화제였던 언더그라운드 랩 그룹 거리의 시인들의 '빙'이 R&B 버전으로 수록돼 있는데, 반갑긴 하지만 썩 효과적인 리메이크 같지 않다. 그저 원곡을 한 번 더 찾아 들어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R&B 보컬그룹이 그리 많지 않은 시장에서 과연 얼마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싶은 그룹.
햄촤: 제목 그대로 종합선물세트처럼 곡마다의 장르나 색깔이 제각각이지만 그래서 더 일관적인 설득력을 갖는 앨범이기도 하다. 타이틀곡 '울산바위'는 아이돌 그룹이 이벤트성으로 부르는 트로트가 아니라, 마치 쭉 트로트를 해온 기성 가수의 노래처럼 느껴질 정도로 '제대로'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마지막 트랙에 실린 '울산바위 Highway Remix ver.'는 그야말로 결정타다. 지난번 "나르시스" 리뷰에서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던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런 색깔이 녹아나는 것"이란 표현을 썼지만, 이쯤 되면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와 스타일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으며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마치 자신들의 추억과 취향에 동참해주길 청자에게 어필하는 제스처처럼 보일 지경이며, 나로선 그들의 추억으로의 초대에 참석을 거부하기가 힘들다. 90년대 J-Rock의 향기를 강하게 풍기는 '바나나 쉐이크'와 '정통 K-록 발라드'정서에 푹 빠져드는 '수필'은 한 번씩 들어보시길.
김윤하: 원곡이 지닌 온도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지난 "솔라감성" 시리즈보다 훨씬 노래에 집중하게 된다. 시리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카드였던 '바보처럼 살았군요'와 '그리움만 쌓이네'가 어찌 되었든 고음부에서 한 번 터져줘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져 듣는 내내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었다면, '꿈에'는 시리즈 타이틀 그대로 보컬리스트의 감성을 조용히 따라가게 된다. 왕왕 노래방이라는 비난을 받곤 하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싱글 특유의 성긴 소리 매무새도 이 곡에서만은 장점으로 기능한다. 습관처럼 등장하는 비음을 조금만 더 담백하게 조율했다면 조금 더 편안히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미묘: 우선 재미있는 점은, 싱글인데 (매우 인트로스러운) 인털류드가 타이틀 '너=천국' 다음에 삽입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도자료에 트랙 크레딧도 잘 기재돼 있다.) 익숙한 스윗튠의 취향이 다소 느긋하게 배어있다. 취향에 따라서는 멤버들이 트랙을 휘어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는데, 기타가 잘 '캐리'해주는 '캐리'에 비해 '너=천국'이 조금 더 그렇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곡 다 '스윗튠치고는' 사운드가 빼곡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스누퍼의 무해한 화사함에 잘 맞아 들어간다. 느긋한 산뜻함 속에 간질간질하게 감정을 건드려주는 트랙.
유제상: 6인조 남성그룹 스누퍼의 새 싱글. 이번에도 예의 스윗튠의 곡들로 무장하였다. 다만 곡의 분위기는 좀 더 90년대 FM 세대에 가까운 느낌. 타이틀 '너=천국'은 이러한 레트로 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차분한 발라드다. 이 곡을 들었을 때 아저씨인 평자는 프렌즈의 '아주 작은 모습으로'나 앤의 '내안에 있는 너'를 21세기에 되살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또 혼자만 아는 래퍼런스를 지 혼자 좋다고 대버렸군 후후... 취향에 맞았다는 이야기다.
미묘: 랩의 '기세'나, 가사에서 말하는 "목소리빨"보다는,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는 휴지부와 라임으로 플로우를 꾸미는 스킬에 집중하는 것 같다. 어딘지 차력사 느낌이 나는 후렴을 제외하면, 랩이 '귀를 때려대는' 맛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느긋하게 들리기도 한다.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시종일관 뛰어다니는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어딘가 오디오와 안 맞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것도 같다. 목소리가 반주를 적극적으로 잡아먹는 인트로나, 퍼포먼스 비디오의 질감을 보여주다가 댄서들의 트워킹 옆으로 라비가 사라져버리는 장면 등이, 안 그래도 아니메 캐릭터처럼 표현된 라비를 중심으로 한 언캐니함에 A와 V의 부조화까지 더하며 흥미를 더한다. 특이한 뮤직비디오다. "여자들을 깎아내리는 가사로 반응을 바라는 래퍼들 싸그리 ㅈ까잡솨"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유제상: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채널 통합 브랜드 '젤리박스'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곡으로 등장한 빅스 라비의 싱글. 들은 대로 쓰자면 'Harlem Shake' 같은 전주가 마구마구 나오더니 라비가 랩을 한다, 끗. 평자는 라비가 이 정도로 랩을 잘하는 줄 잘 몰랐지만, 곡을 만든 쪽은 'DamnRa'가 듣기 지루하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이런 건 지디니 탑이니 그 외의 아이돌들이 다 해버려서 확실한 변별점이 필요했는데, 만듦새가 깔끔한 것에 비해서는 차별화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듯. 뮤직비디오가 시종일관 군무에 그치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미묘: 보컬들의 음색은 꽤 매력 있다. 다만 트랜스 게이트가 치고 올라오는 업템포의 곡에 비해서는 거의 발라드처럼 노래한다는 것이 아쉽다. 그 점에선 디렉팅 역시 꼼꼼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사실 반주에 묻히지 않게 하려고 보컬을 과하게 앞으로 빼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겉도는 측면도 있다. 멜로디의 색채가 어느 정도 감상적이면서도 가요적 '뽕끼'가 많지 않아 부드러운 음색과 어울리는데, 곡의 구조 자체에 자극이나 변화가 적으며 옛날 댄스 가요 같아서, 부담 없고 착하게 그저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소구하는 시장의 특수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케이팝으로서는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겠다. 미처 놓친 작년 7월의 데뷔작(이효리의 'Toc Toc Toc'을 리메이크했다)을 찾아보니, 그룹에 더 잘 맞는 옷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유제상: 라임은 "베트남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채널인 VTV3에서 2014년 3월부터 7월까지 방영된 오디션 Ngoi Sao Viet 출신의 아이돌 그룹(이상 네이버 뮤직에 수록된 보도자료에서 발췌)"이란다. 그것은 음원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 아니므로 타이틀 'Part Of Me (Feat. 유지인)'를 들어보았는데... 유로 댄스였다. 평자는 유로 댄스를 듣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이 장르에서 과하게 의도된 청량감이 발포형 비타민제 같아서 싫다. 무슨 이야긴지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싫다는 거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호불호에 의한 평인 거고, 평자에게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는 건 그만큼 'Part Of Me'가 장르 공식에 충실하다는 거다. 리듬 게임을 해도 이런 장르의 음악만 플레이하신 분이라면 만족스럽게 들으실 수 있겠다.
미묘: 금속성 스네어를 제외하면 특이한 점이 그다지 없는 곡인데, 약한 임팩트는 상당 부분 보컬의 처리에서도 비롯된다고 본다. 여러 겹의 보컬 트랙들이 서로 깊이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납작하고 단선적으로 얹혀 있어, 집중도를 보여줘야 할 때도 혼란도를 만들어야 할 때도 그저 구름처럼 뒤섞이고 만다. 파열음을 강조했더라면 귀를 조금이라도 더 자극했을 "Poker"의 발음이 "foker"에 가깝게 넘어간 점 등, 디렉팅 역시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 편곡 역시 '강렬한 힙합곡엔 대체로 이런 것들이 들어가지?'하는 요소들을 그러모은 것에 그친다.
유제상: 제목이 제목이니만치 "Can't read my/Can't read my/No he can't read my poker face"의 개드립을 치려 했건만, 노래가 진짜 레이디 가가의 'Poker Face'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듯하여 개드립이 개드립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특히 가사가 그러한데, 속을 알 수 없는 여성과의 사랑 게임을 포커판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둘이 비슷하다. 단지 관점이 남자냐 여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곡은 흥겨운 비트의 전형적인 남성 아이돌 노래지만 묘하게 예스러운 느낌이 있는데, 아마 후렴의 마무리가 세 번씩 정박, 두 번씩 반박으로 울리는 스네어 소리로 끝나기 때문인 것 같다. 요런 식의 비트 운영이 이 곡을 2000년대 초반의 댄스곡처럼 만들어 버린다. 그 외에 특기할 점은 그다지...
유제상: 예전 싱글인 'You are My'가 UN이나 노을 등을 연상시키는 남성 발라드였던 것에 비해, 'Just Sweet'는 누가 듣든 여성 아이돌의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곡이다. 정말이지 어떤 사정에 의해 키만 바꿔서 부르게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이런 부자연스러움이 곡 전체를 지배하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심지어 가사마저 그런 느낌을 주니 시간이 되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바로가기
미묘: 요즘 애프터스쿨이 물밑의 화두이긴 한 모양이다. 용감한 형제도 초심을 되찾으려는 건지 '너 때문에'와 'Diva'(2009)를 되살린 듯한 곡을 선보인다. 언제나처럼 그의 곡은 표정을 싹 비워내고 앞으로 돌진한다. 간단한 멜로디를 반복하다 지겨워지려 할 때쯤 한 옥타브를 패기 있게 올려버려도 그것이 통하는 점 또한 용감한 형제의 마법일 것이다. "밥을 먹다가 펑펑 울었어"만 해도 통렬한데 굳이 "네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어"를 부연해주는 것 역시, 용감한 형제의 밑바닥 세계관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아득해진다. 이 곡은 여러모로 익스트림하던 스텔라가 슬슬 대중화를 꾀하는 지점이라 읽히는데, 그 방법으로서 기존의 장점들을 무난하게 가다듬고 신파에 방점을 찍는다면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다.
유제상: 이 바닥에서 할 거 다 해보신 스텔라. 신곡 '펑펑울었어'는 스텔라의 기존 노래보다는 씨스타나 AOA가 날 더워지는 이맘때 내는 그것을 연상시킨다. 분위기 흥겹고, 가사 솔직하고, 언제 들어도 부담 없이 무난하고... 아마 만든 이들의 전력에 의해 이런 인상을 풍기는 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곡이 대중적으로 잘 뽑힌 만큼 스텔라 특유의 음울하고 퇴폐적인 느낌은 사라져 버렸다. 하긴 호응이 그 정도로 없다면 노선을 바꾸는 것이 당연하긴 하겠으나, 이래서야 이들이 원래 뭐하던 그룹인지를 다 잊어버리게 되잖나.
햄촤: 그룹의 색깔보단 용감한 형제의 스타일이 더 전면에 드러나 버려서인지 노래를 흥겹게 들으면서도 스텔라라는 그룹의 이미지가 기억 속에 새겨지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뮤직비디오는 영화 〈스프링 브레이커스〉에서 영감을 얻어온 듯한데, 예쁘게 찍히긴 했으나 서사적으로 딱히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함께 수록된 '벨소리' 역시 상투적인 내용의 가사지만 사운드만큼은 매끈하게 잘 빠진 곡이다. 멤버들이 지닌 끼와 재능이 서서히 대중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으니 좋은 반응을 기대해본다. 이제는 상승세를 좀 탈 때도 됐다.
김윤하: 솔직히 이 앨범을 이번 회차에 다루는 다른 앨범들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직까지도 고민스럽다. 어쨌든 지난 앨범에 이어 바꿀 수 있다면 이름도 얼굴도 모조리 바꾸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그룹의 들끓는 의지가 앨범 안에 가득하다. 모든 악기에 디스토션을 건 듯 쏟아지는 하드록 사운드를 들려주는 'Out of Love'와 'Take Me Now', 딱 떨어지는 깔끔한 팝 록 스타일의 'Paparazzi' 등 최근 이들의 앨범을 눈여겨 봐왔던 이들이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곡들이 안정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고무적인 건 이들 음악의 핵이자 독이라 할 수 있는 보컬 이홍기의 일명 '뽕기 어린 쿠세'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사랑앓이', '지독하게' 같은 곡들로만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보길 권한다. 꽤 흥미로운 첫 만남일 것이다.
미묘: '우리 록밴드 맞거든요!'라는 듯이 아무튼 빡세게 달렸던 전작의 연장선상이지만, 또한 꽤나 다르게 들린다. 일단 '최대한 전방위적으로 쎄야 한다'는 기세와는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또한 두드러지는 것은 공격적이면서도 공간감 넓은 사운드의 활용이다. 그것은 때로 거세면서도 감상적인 부분을 보충하는 소리의 풍경을 이루거나, 곡에 어딘가 시원한 맛을 더해주거나, 또는 노래를 '잘하는' 발성의 덜 '막가파'적인 부분의 아쉬움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화염, 불타는 스트래토캐스터, 방독면 등 메탈 밴드 뮤직비디오의 클리셰들을 섞어놨지만, 그 '원본'이나 세기말의 서태지보다는 어딘지 한국 드라마 같은 기분을 담은 뮤직비디오도 재미있다. 드디어, 영미권 록의 '원본'이나 가요-록 등 인접한 모델들로부터 거리를 두며 조금씩 독자적인 노선을 모색하는 앨범.
미묘: Devine Channel과의 작업으로 브랜딩을 이어가고 있는데, 일보 전진과 일보 후퇴로 보인다. 전작의 우아함은 익숙하고 무난한 여름 가요 스타일에 다소 묻히고, 대신 멤버들의 음역과 음색에 대한 안배는 좀 더 잘 이뤄졌다. 느긋하다면 느긋하고 루즈하다면 루즈한데, 브리지에서 아주 잠시 여름밤의 나른함으로 빠져나갔다 되돌아오는 순간을 매력 포인트로 꼽고 싶다. 아주 무난하게 흘려 듣다가 순간순간 보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트랙.
햄촤: 지난번 발표한 디지털 싱글 'Glow'는 멤버들의 매력적인 음색을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면 이번 'Paradise'는 여름 시즌 즐기기 좋은 댄스곡이다. 눈에 확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계절에 스며들기 좋은 노래. 멤버 교체와 콘셉트의 변화, 그리고 꽤 긴 공백 후 컴백한 이번이 헬로비너스에겐 시즌 3가 아닐까 자의적으로 구분을 해보았는데, 오랜만에 대중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일 시기에 발표한 곡으로선 아쉬움도 없진 않으나 또 다른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론 매우 좋아하던 라임의 맛깔 나는 랩 파트가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부분. 자 이제 판타지오는 어서 앨범을 내주시오.
김윤하: 타이틀 곡 'What's Your Numer?'를 통해 여전히 훵키(funky)한 면모를 어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조미의 매력, 특히 보컬이 가진 매력은 발라드를 통해 훨씬 잘 드러난다. 이번 앨범의 경우 '이제는 없다(Empty Room)'가 그런 곡인데, 저음과 중음, 고음부 모두에서 유효한 섬세한 감정선과 그를 흩트리지 않는 바이브레이션의 긴장감 유지가 인상적이다. 특히 폭발하기보다는 한 품 꺾어 끌어안듯 부르는 고음부가 조미의 특기인데, 이 부분은 언어의 특성 때문인지 한국어와 중국어 버전에서 각기 확연히 다르게 터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미묘: 무지막지하게 두들겨대는 베이스와 빠른 속도로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브라스, 'What's Your Number'는 굉장한 속도감으로 굴러간다. 브리지에 도달하기 전까지 모든 게 번쩍거려서 자칫 피로감을 느낄 법하지만, 거기서 조미의 음색이 키 플레이어로 등장한다. 거의 무심하다시피 일관되게 흐르는 드럼과 함께 살짝 눌려있는 듯한 조미의 보컬이, 이 자극적인 소리 풍경 속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활보함으로 인해, 그 화려한 색채감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좀 더 보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는 대비.
김윤하: 타이틀곡 '니 여자친구'는 노래는 물론 의상, 뮤직비디오 시놉시스에서 전반적인 연출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초반 즈음을 의식한 근과거풍 레트로의 영향 아래 놓인 곡이다. 좋게 말해 꽉 차고 나쁘게 말해 고구마처럼 뻑뻑한 사운드 운용마저 자연스레 그즈음을 떠올리게 하는데, 덕분에 노래 도입부와 종결부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니 여자친구 참"이라는 코러스만 맴도는 부분이 일종의 숨구멍이자 현재로의 회귀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어지는 수록곡들 역시 이러한 접근이 2016년에 유효한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만들지만 마지막 트랙 'Attention Part.2'가 등장하며 그 모든 균형이 깨진다. 이제 절반도 훌쩍 지나버린 '병신년'을 가지고 두어 번 언어유희를 즐기는 사이, 이들을 향한 일말의 관심마저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유제상: 기억이... 기억이 없다. 작년 5월에 싱글이 나왔었다는데, 다룬 기억이 없다. 일단 여성 사인조. 노래는 쪼금 유행이 지난 듯한 훵키한 힙합 비트 댄스곡. 뭐랑 비슷하냐면 포미닛 초창기 곡이나, 음... 좀 이상한 비유인데 릴 존이 이스트 사이드 보이즈와 부른 'Get Low'랑 비슷하다. 그래, 〈니드 포 스피드 언더그라운드〉 1편에서 줄창 나오는 그거. 거기에 랩을 싹 지우고 한국여자 목소리를 넣었다고 해야 되나. 물론 뮤직비디오의 선정성은 비교도 할 수 없이 레이샤 쪽이 높다. 이제 물 건너온 뮤비보다 국산 뮤비의 선정성이 더 높은 게 당연한 일이라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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